다정한 사람들

안녕하세요. 독자님, ＜뉴스앤조이＞ 요셉입니다.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엊그제 예배를 마치고 어머니를 만났습니다(제가 예전 레터에서 어머니가 러시아에 선교사로 가 계시다는 거 말씀드렸죠. 병원 진료 때문에 잠깐 귀국했습니다). 교회 식당에서 함께 국수를 먹는데, 어머니의 옛 사랑방 식구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하나둘 옆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이에요, 권사님", "잘 지냈어요?", "어떻게 지내세요." 오랜만에 만난 교인들은 시간을 잊은 채 대화를 나눴고, 저는 편히 말씀 나누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어머니가 러시아로 떠나기 전, 그러니까 제가 출가하기 전, 부모님과 형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 살 때 이야기인데요. 어쩌다 한 번 식사를 할 때면 머리가 커진 아들들을 둔 여느 부모와 자식 간 모습처럼 '집에 좀 빨리 와라', '같이 밥 좀 먹자'는 잔소리를 빼놓지 않으면서도 교회 사랑방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습니다.

저는 사랑방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습니다. 그것은 연약하지만 서로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여러 사역지를 전전하며 평생 '사모'로 살아 오신 목회자의 아내분, 저녁마다 친구들과 술 마시느라 밥 먹듯이 예배에 빠지시던 활달한 교인 분, 지역 공공기관 식당에서 일하며 부지런히 살림과 육아를 책임지는 권사님, 안타까운 사고로 자녀를 잃어 오랜 기간 어려운 시간을 보내시던 분까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개성 있고 사연 많은 보통의 삶이 사랑방에 어울려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사랑방 식구들을 사랑했습니다. 모두가 중년을 거쳐 당신과 같은 노년에 이르기 시작한 여성들이었고, 왠지 교회 모임이라고 하면 성숙하고 정제된, 은혜로운 이야기만 나눠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거칠고 뾰족한 말을 거침 없이 털어놓은 그들이 친자매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대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같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그런 모습을 전하면서 어머니는 '은혜'와 '감사', '사랑' 같은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섬김이였던 당신이 러시아로 가게 되자, 다른 사랑방으로 흩어지게 될 식구들을 많이 걱정했습니다. 러시아에 있을 때도 여러 차례 안부를 물었고, 교회에서 볼 때면 마치 헤어진 형제를 만난 것마냥 부둥켜 안고 손을 맞잡은 채 한참 대화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덩달아 그분들에게는 조카뻘인 저 역시 교회 로비나 동네 골목에서 마주칠 때면 꼭 먼저 알은체를 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성격상, 제가 사고 치고 속 썩인 이야기를 분명 고스란히 사랑방에 일러바쳤을 테니, 그분들도 저를 낯설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수백 명이 출석하고, 지하 4층부터 지상 7층까지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큰 예배당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되면 주차장에 외제 차가 빼곡하게 들어서고,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서면서 얼굴을 알지 못하는 교인들이 예배당에 들어서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20년 넘게 다녔지만 교회가 점점 낯설어집니다.

그런 교회를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오랫동안 편견을 가져 왔습니다. 이렇게 익명성이 강한 공동체가 과연 진정한 교회일까. 잘 차려진 옷을 입고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예배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일까, 하는 생각을요. 바쁘다는 핑계로 사랑방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으면서, 교회 모임을 향한 시각도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방 이야기를 들으면,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교회다운 교회, 공동체다운 공동체를 생각할 때 예배당의 크고 작음이나 교인 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건 아니겠지요. 물론 교인이 적을수록, 관계가 친밀할수록,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진정한 공동체'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겠지만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내 모습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존중해 주는 사람들의 교회가 궁극적으로 당사자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줄 테니까요.

'건강한 교회', '바른 목회', '대안 공동체' 등 지난 한국교회를 비판하며 다양한 담론이 쏟아진 지 오래입니다. 모두가 귀 담아 들을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가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면, 시스템이나 사역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에는 사람, 편견 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기다리고 지지해 주신 예수님처럼, 그런 사람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 역시 어떠한 교회 개혁에 관한 거대 담론을 떠나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을요.

독자 님은 매주 교회에 출석하면서 어떤 생각, 마음을 갖게 되나요? 저는 7년 가까이 봉사했던 고등부를 올해로 마감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좀 더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고, 여러 도전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럼 오늘 한 주도 고생하셨습니다. 주말 동안 평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M스토리랩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