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영상 담당 경소영 PD입니다. 탄핵 인용 후 편안하셨나요. 저는 언제 파면 선고가 있었나 싶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국을 보며 시간의 상대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탄핵 선고 후 극우 목사들의 주일 설교 모음을 편집하고, 탄핵 선고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주간 처치독을 만들고 나니 일주일이 후딱 갔습니다. 그 사이 내란 잔존 세력들의 행보가 아주 활발했더라고요.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죠.

탄핵이 인용되면 당분간은 평화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이 울려 퍼지는 순간, 대부분 시민들은 환호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탄핵 기각을 굳게 믿고 있던 분들이죠. 그들은 윤석열 파면 이후 대한민국이 공산화될까 봐, 중국에 먹힐까 봐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개탄스럽게도 그 공포의 중심에는 한국교회가 있습니다.

선고 다음날 카메라를 들고 광화문에 갔습니다. 파면 선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다기에 그들의 얼굴을 보러 갔죠.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우비 입고 태극기 든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탄핵 사기! 이재명을 감옥으로!"라고 소리쳤습니다.

조나단 목사는 "우비 색이 다양해서 앞에서 보니 꼭 무지개 같다"고 말했습니다. 헌금 시간이 되고 비가 좀 잦아들자 "돈 젖지 말라고 비가 그친다"며, "하나님께 이 나라 지켜 달라고, 특별히 전광훈 목사님 힘내시라고 감사 헌금을 더 드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윤석열은 탄핵됐지만, 극우 개신교 목사들은 선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탄핵이 기각되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당당하게 '국민 저항권'을 발동하자고 합니다. 탄핵 반대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계속 모여서 집회하고 기도하면 윤석열도 돌아올 수 있고, 이재명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황 선거를 다룬 영화 '콘클라베'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예수님도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콘클라베를 이끄는 주인공 로멜리 주교는 이렇게 말하고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 주십사 주님께 기도합시다"라며 연설을 맺습니다. 저는 영화 초반에 나온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몇몇 극우 개신교 목사들이 떠올랐거든요. 지나치게 확신에 찬 그들의 설교가 강한 믿음의 표현이 아닌, 통합과 포용을 가로막는 원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극우 목사들의 발언을 편집하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미움이 올라옵니다. 잘못된 정보로 교인들을 호도하는 자들에게 분노도 일고요.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기도하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이승우 산문집 ＜고요한 읽기＞ 한 구절을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가 어떻게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적들을 너무 미워하고 그들과 오래 싸우고 그들을 너무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듯이 미워하는 사람도 닮아간다. 미워해서가 아니라, 미워하느라 생각해서이다. 생각은 그 대상과의 일치를 지향한다. 사람은 생각한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번 주말에는 그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미움에 나의 신앙을 잡아먹히기 싫어서요. 밖에 나가 벚꽃도 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을 묵상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