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반리 장만옥"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퀴어 '코미디'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은 드문데, 그 작품이 SF·호러 등 매니악한 장르를 주로 다루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다고 해서 눈길이 갔어요. 막상 예매하려고 보니 이미 전 회차가 매진돼 아쉬웠는데, 영화가 관객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지 뭐예요. 덕분에 영화제 마지막 날 기념 상영이 열려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반리 장만옥"은 서울에서 퀴어 바를 운영하던 중년 레즈비언 여성 장만옥이 가게를 접고 고향 '이반리'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예요. 만옥의 귀향은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꽤 큰 화제가 됩니다. 만옥이 이혼녀인 데다가, 하필 그 전남편이 현재 이반리 이장이기 때문이죠. 이쯤 되면 영화 장르가 공포나 사회 고발극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영화는 의외로 유쾌하게 흘러갑니다. 영화를 연출한 이유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퀴어 영화를 포함해 소수자 영화들을 보면 대체로 불행 서사가 강조된다. 사람들이 유쾌하게 보면서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풍자가 담긴 코미디를 꼭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하셨더라고요.

만옥은 이장 선거에 출마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전남편에게 강제로 아웃팅당합니다. 주민들은 "숭하다"며 손가락질하고, 만옥을 지지하던 한 연로한 주민은 그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된 뒤 앓아눕기도 하죠. 이를 계기로 현 이장은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 때문에 무너진다", "동성애는 죄악이다", "여자 사위 반대한다" 같은 피켓을 들고 몰려온 개신교인들과 함께 만옥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일손 하나가 절실한 농촌 마을에서, 여자 사위면 어떻고 퀴어 이장이면 어떤가요. 주민들은 '레즈비언'이라는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눈앞에서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만옥과 그의 파트너, 남자가 되고 싶은 이장의 딸 등을 만나며 점차 달라집니다. 결국 주민들은 혐오 세력에 동조하는 대신, 트랙터와 트럭에 무지개 깃발을 걸고 전국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함께 축제를 벌여요. 그렇게 이반리는 태극기와 마을기, 그리고 무지개 깃발이 나란히 걸리는 '전국 최초 퀴어 마을'이 됩니다.

영화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어요. '중년 퀴어'와 '지역(농촌)'이라는 주제가 아주 맛있게 버무려져 있어서, 상영 내내 얼마나 낄낄대며 웃었는지 몰라요. 저에게는 용기 있게 선택해 나가는 만옥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그와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마을 사람들이 깊게 남았어요. 교회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500석이 넘는 극장이 관객으로 꽉 들어찬 모습,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길게 울려 퍼진 환호와 박수,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펑펑 울던 관객도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가 정식 개봉되면 꼭 한 번 관람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편집국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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