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뉴스앤조이 요셉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인사 드리네요.

초등학생 시절, 저는 형과 놀이터를 자주 다녔습니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늦으시는 날이 많았고 누나들 역시 학교 야간 수업 때문에 밤에나 집에 들어왔습니다. 케이블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형과 저는 들개마냥 윗동네 아랫동네 골목을 헤매고 놀이터를 쑤시며 다녔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다 그랬죠.

동네 놀이터가 다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곳은 미끄럼틀이 높고 구조가 복잡해서 다른 곳보다 재밌고, 또 다른 곳은 모래가 많고 공터가 넓어 친구들과 땅따먹기나 얼음땡, 숨바꼭질을 하기 좋았습니다. 등나무와 의자가 잘 조성돼 있어 아지트 삼기 좋은 곳도 있었는데, 그곳은 꼭 교복을 입은 무서운 형·누나들이 가끔씩 나타나서, 갈 때마다 주변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어떤 형이 쌍둥이인 저희를 불러 세워 누가 싸움을 잘하는지 겨루기를 시킬 때가 있었거든요. (…)

그럼에도 놀이터는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저와 형을 구출해 준 해방구였습니다. 약속하지 않아도 친구들을 볼 수 있었고, 부모님이 안 계셔도 돈이 없어도 눈치 보지 않고 시간 제약 없이 놀 수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백련산 등산로 입구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개나리 놀이터라는 곳을 좋아했는데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놀이터 입구에 앉아 노을에 물든 구름을 한참 쳐다보곤 했습니다. 빛에 반사된 구름과 색의 조화는 예측하기 어려웠고, 그 변화가 아름답고 신비로워 계속 보게 됐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터라 '예수님이 저런 구름을 타고 온다는 건가?' 라는 생각도 했었고요.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성인이 되고 한참 후 놀이터에 다시 자주 가게 됐습니다. 아이도 저를 닮아서 그런지, 으레 그 또래가 원래 그런지, 놀이터를 좋아하더라고요. 오후 4시 어린이집･유치원에서 하원하고 나면 1시간은 꼬박 놀이터에 머물다 귀가했습니다. 기껏해야 미끄럼틀･그네･시소를 타거나 모래를 가지고 놀거나 숨바꼭질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건데, 아이들은 왜 그렇게 좋아할까요.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다가 도로 달려와서 괜히 시비 걸고, 고함 한 번 지르면 다시 자지러지면서 흩어지는 아이들을 보면, 매일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신기하고 부러웠습니다.

이전에 제가 소셜미디어에 썼던 대목인데, 저는 실내 키즈 카페나 쇼핑몰보다 야외 공원이나 실외 놀이터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는 온갖 상호작용을 합니다. 탁 트인 공간에서 걷고 뛰고 기고 오르고 만지고 빨고 구르고 넘어지고 까지고 다치는 모습을 보면, 아이라는 우주가 주변 세상과 교감하면서 사방으로 확장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매년 여름 얼굴이 까맣게 타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놀이터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건, 최근 벌어진 한 가지 사건 때문입니다. 아파트 놀이터가 없어질 뻔했습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공지문이 올라왔는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아파트 놀이터 철거를 주민 투표에 부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죠.

나름 중요한 사안인데 아무런 설명 없이 바로 투표를 진행하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관리사무소에 의견을 내야 하나, 대자보라도 붙여야 하나 고민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늦장을 부리다 보니 투표 기간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결과가 나왔는데 다행히 '부결'.

'입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입주민 중 절반 이상이 찬성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반대가 18%로, 기권보다 적었고요. 내년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는 결과를 듣고 안도하며 어른들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유일하게 놀 수 있는 곳인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없애느냐는 겁니다.

어른 중 한 사람으로서 그 말을 듣고 미안해졌습니다. 놀이터가 저에게 소중하지 않은 곳도 아닌데, 비겁하게 지켜만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견을 내면 반대 목소리를 들을 테고 또 지난한 토론과 설득 과정을 밟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게 편해서 그랬다고, 네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원하는 결과를 보고 안심하는 제가 부끄럽네요. 멀지 않은 시기 같은 안건이 또 올라올 것 같은데, 그때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독자님은, 최근 어떤 일을 겪으셨나요. 메일이나 독자 피드백으로 남겨 주시면 좋겠네요. 그럼 이번 한 주도 고생하셨습니다. 주말 동안 평안과 쉼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사역기획국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