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주 - '거룩한 잡놈'

2024. 8. 25.

🗞️8월 4주 - '거룩한 잡놈'

'위안부' 소녀 기리는 500번째 예배

박영규 목사(74)는 역사 공부를 하다가 '위안부' 소녀들이 겪은 참상을 알게 됐다. 일본 자민당의 한 국회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살펴본 결과, 1930년부터 1945년까지 10~20대 여성 41만 명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고 이 중 14만 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박 목사는 역사를 외면하는 일본에 분개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2015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과 서울 동대문교회 인근을 오가며 '위안부' 소녀를 기리는 예배를 드렸다. 동대문교회는 '위안부' 참상을 폭로했던 김학순 집사가 다닌 곳이기도 하다.
박 목사는 아내, 교인 2명과 함께 매주 '위안부' 소녀들을 기리는 예배를 드렸다. 8월 21일은 500번째 예배를 드린 날이었다. 박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 500회 예배 때에는 주위 목사님들과 민주당 민병덕 국회의원, 김민석 최고위원이 참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주도 빠짐없이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역사적 책임과 관련 있다고 했다. 박 목사는 "일본이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를 부정하고 있어서 계속 드리는 것이다. 참회를 해도 모자란데 강제성은 없었다고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규 목사는 '위안부' 소녀를 기념할 교회도 세울 생각이라고 했다. "아직 계획 단계이긴 한데 하나님께서 언제 세워 주실지는 모르겠다. 만일 안 되더라도, 기념 예배는 세상 떠날 때까지 이어 가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약자 '청년' 섬기는 이든교회

"교회는 청년들 편이 돼 줘야죠. 말마따나 열정이 없으면 북돋아 줘야지 않겠어요?"
서울 명동에 있는 이든교회(한희준 목사)는 매주 일요일 레스토랑을 빌려 예배를 드린다. 2012년 한희준 목사가 개척했고, 현재 청년 15명 정도 모인다. 이든교회는 약자를 섬기는 교회를 표방한다. 이든교회 사명 선언문 첫째 항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약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의 소외당하고 차별받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이든교회가 섬기고자 하는 약자는 '청년'을 뜻한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청년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시는 조건 없는 포용'을 선사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든교회는 헌금과 봉사, 예배 출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고, 다른 생각을 지녔다고 해서 정죄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기다려 주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청년들은 두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말씀을 전하기도 한다.
한희준 목사는 ＜가톨릭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교만이 줄 수 있는 희망, 즉 '조건 없이 품는 공동체'를 청년들에게 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청년 세대에게는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고 위로받을 수 있을 곳이 필요하다"면서 포용을 안겨 주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가톨릭뉴스＞는, 올바름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관을 교회와 기성세대가 붙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는) 탄압받는 참사 희생자와 노동자, 단죄받는 성소수자들을 보며 '왜 저 사람들을 외면하죠?' 묻지만, 기성세대는 '사탄에 넘어가지 말라'는 억지만 부린다."

'거룩한 잡놈'

충북 영동 물한계곡교회에서 목회할 당시, 동네 어르신들의 손발과 말벗이 되어 준 김선주 목사(대전 길위의교회)는 '잡놈'이 되고 싶어 했다. 김 목사는 저서 ＜목사 사용 설명서 - 어느 시골 교회 목사의 삶과 신학＞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도 잡놈이 되고 싶어졌다. 목사라는 제사장적 순혈주의, 그 위선적인 거룩함과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벗고 잡놈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참 잡스럽게 사셨다. 목수, 의사, 선생, 혁명가, 설교자, 상담가…"
김 목사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전단지를 돌려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전단지에는 △보일러가 고장나면 전화합니다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 있으면 전화합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전화합니다 등 10가지 내용이 적혀 있다.
김병삼 목사(만나교회)는 특히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를 보고 "참으로 압권"이라고 했다. 김선주 목사의 ＜목사 사용 설명서＞를 보고 나서 "진짜 목사가 되려면 '잡놈'이 돼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김병삼 목사는 ＜국민일보＞ 칼럼에서 "언제부터인가 목사가 '쓰임'을 생각하지 않고 '대접'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특별 대우를 받고 교인들이 지극정성으로 받들어 주니 '잡놈'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이 말에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목사가 잡놈이 돼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곳에만 머문다면 '수도사'는 될 수 있어도 진정한 목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잡놈'이어야 하지만 '거룩한 잡놈'이어야 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김 목사는 "'잡놈'이 돼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목사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거룩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일을 하는 곳이 거룩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땅의 목사들이 '거룩한 잡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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