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 뉴스 브리핑은 기독교반성폭력센터 박신원 사무국장의 칼럼으로 대체합니다. - 편집자 주

1980년대 인기 개그 프로그램 중에 '시커먼스'라는 코너가 있었다. 얼굴을 검게 칠한 두 명의 개그맨이 힙합 음악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말로 웃음을 유발했다. 당시엔 큰 인기를 끌었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흑인을 비하한다는 논란이 일며 폐지되었다. 그 이후에도 흑인이나 동남아인을 소재로 한 유사한 개그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캐릭터는 언제나 어눌하고 미개하며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됐다. 볼 때마다 실소 뒤로 싸하고 씁쓸한 감정이 남았다. 특정 집단을 웃음의 소재로 소비하며 조롱하는 개그는 결코 즐겁지 않다. 나는 누군가를 모욕하면서 웃고 싶지 않다.

작가이자 방송인인 유병재는 2018년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미디를 짤 때, 재미있는 농담 한마디를 하는 것보다 재미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농담 한마디를 안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오늘 그 말을 목사들에게 전하고 싶다. 강단 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웃음을 만들기 위해 특정 존재를 희화화하고 억압하고 상처 내는 말들이 얼마나 쉽게 흘러나오는지를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아 왔다.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한 영상이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장이 한 원로목사 추대식에서 설교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교회 표어는 '멋지게 살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성도들 보기에, 세상 보기에 멋지게 살자. 그래서 우리 교회 여성 성도들, 화장 안 하고 오면 혼냅니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화장인데, 그 화장발을 빌리지 않고 어떻게 살라고 하느냐."

나는 잠시, 내가 모르는 성경 부록 어딘가에 '여성 외모에 대한 농담'이라는 장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였지만, 아쉽게도 불쾌함까지 익숙해지지 못했다. "여자는 예뻐야 돼", "여자는 예쁜 게 경쟁력이야", "화장이라도 해서 경쟁력을 높여야지." 이런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나 칭찬으로 들리지만,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평가와 비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말이며 그것이 바로 부드럽게 포장된 '성차별'이다.

남성에게 화장은 선택의 문제지만, 여성에게는 기본 예의로 강요된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다", "성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여성에게 부과된 '꾸밈 노동(beauty labor)'이며, 그 압박은 사회를 넘어 신앙의 영역에서도 반복된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화장이다"라는 말은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며 하나님이 지으신 본래의 아름다움을 부족하고 손봐야 할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여성의 몸은 이미 하나님의 창조이자 축복이지, 화장으로 완성되어야 할 미완성품이 아니다.

이것은 여성의 신앙적 주체성을 훼손하고 교회 안의 젠더 위계를 강화하는 신학적 폭력이다. 여성은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온다. 결국 "여자는 화장해야 예쁘다"는 말은 여성의 자유와 존엄, 그리고 신앙의 고유한 주체성을 무너뜨리는 교회의 권력 언어이자 성차별의 형태이다.

웃음의 형태를 띤 폭력은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그 폭력은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은혜로운 유머'라는 가면을 쓰고 교회 안을 떠돌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세 요소로 로고스(논리), 파토스(감정), 에토스(인격)를 말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에토스, 즉 말하는 사람의 신뢰와 인격이다. 오늘의 발언이 문제적인 이유는 바로 그 발화자가 한 교단의 현직 총회장이기 때문이다.

목사라는 직책, 오랜 목회 경력, 교단의 대표성은 모두 말의 신뢰도를 높인다. 그의 말은 개인의 농담이 아니라, 교단 전체의 얼굴이 되고 신앙의 덕목이 된다. 설교의 순간, 목사는 이미 절대적 발언권을 가진다.

"좋은 말로 할 때 아멘하세요." 그가 청중을 향해 웃으며 던진 이 한마디에, 예배당 안의 공기는 곧 순응의 질서로 바뀐다. 그다음 이어지는 청중들의 '아멘'은 신앙의 응답이라기보다 권위에 대한 자동적 동의에 가깝다.

설교는 기본적으로 일방향의 소통 구조다. 청중은 자유롭게 반론할 수 없고, 불쾌함을 표현하기도 어렵다. 만약 거부의 몸짓이라도 보인다면,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강단 위의 농담은 더 이상 가벼운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누군가의 불쾌함을 삼키게 만들고, 웃음으로 호응한 모든 이들을 폭력의 공범으로 만든다.

"화장 안 한 여성은 혼낸다"는 말 뒤에도 설교자와 청중의 서열, 남성과 여성의 위계가 이미 새겨져 있다. 목사는 자신의 농담이 불쾌감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폭력적 구조 속에 가담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말을 던지는 것은 기름 탱크 옆에서 성냥불을 붙이는 것만큼 위험하다. 그의 말 한마디는 웃음으로 포장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웃지 못하는 누군가의 침묵이 남아있다.

예장통합 총회장의 설교 주제는 '멋지게 살자'였다. 그러나 진짜 멋짐은 외모나 세련됨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존엄의 힘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미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아름답다 하셨다. 그것이 신앙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멋지게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삼지 않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불편함을 공감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일이다. 청지기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영향력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오늘 강단에 선 이들이 가져야 할 책임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멋지게 살자"는 말이 복음의 언어가 되려면, 그 멋은 화장발이 아니라 감수성과 존중의 빛에서 나와야 한다. 진짜 멋지게 사는 교회는 권력자가 던진 농담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언어로 세워지는 교회다.